인터뷰

참가자: 이샛별/작가, 남인숙/미술비평, 정은빈/큐레이터

날짜 : 2012년 5월 14일

장소: 아트스페이스 루

이샛별 작가의 ‘서술되지 않은’ 전시를 앞두고 전시장이 살짝 소란하다. 한쪽에서는 작품 설치가 마무리 중이고 한쪽에서는 전시장 정리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샛별(작가), 남인숙(미술평론), 정은빈(큐레이터) 세 사람이 모였다. 이샛별 작가가 이번 전시를 통해서 보여주려는 ‘서술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어떤 것인지 인터뷰한다는 명목하에 그의 작품과 작가 본인에 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수다가 시작되었다.

이야기 part 1: 세 명의 인물

? 정은빈(이후 정) : 일단 선생님의 작품에서 가장 상징적인 부분, 세 사람이 등장하잖아요. 항상 트레이드마크처럼. 아마 그동안 많이 질문을 받으셨겠지만, 이 질문부터 시작해 볼게요. 그 세 인물의 의미를 한번 얘기해 볼 수 있을까요?

? 이샛별(이후 샛) : 인물은 셋 또는 둘이 등장합니다. 현실에서 살기 위해서 상징화된 존재가 있다면, 그렇게 그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서 제거된 다른 존재로 도플갱어가 등장해요. 셋이 등장할 때에 첫 번째 도상은, 인간이 가진 어떤 무시무시한 괴물성(상징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현실에서 지워진)을 토끼 가면을 쓴 인물로 표현했어요. 그리고 그 존재(토끼)가 제거된 사회질서 속의 나, 사회에서 살고 있는 현실의 나의 이미지를 얼굴로 표현했고, 마지막으로 눈에 꽃이 박힌 인물은 상상 속의 나이자 내가 의식하는 나(자아), 그 이미지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셋은 결국 한 인물이면서 한 인물을 세 인물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정: 작품에 등장할 때 조금씩 그 역할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서술되지 않은’ 전시에서 그들 간의 역할에 특징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 샛: 작품 안에서 계속 이어오는 그 도상들은 상호작용을 하죠. 제거된 이미지(토끼)에 관해 이야기해보자면, 그 이미지를 우리가 현실에서 만나는 순간들이 있어요. 내가 생각하는 나가 아닌 이상한 어떤 순간을 마주할 때라든지, 외부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져서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었다든지, 이런 식으로 어떤 사건을 통해서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 모습이 깨지는, 낯선 어떤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등이죠. 그리고 그 사건을 계기로 해서 다른 나로 태어나기도 하고. 제거된 나를 마주하는 순간(토끼를 만나는 순간)에, 짜인 틀 안에서 사는 사회적인 존재인 내가 그 순간, 전혀 다른 나로 등장하는 거죠. (작품 ‘휘어진 자’를 보면서) 음, 얼굴이 있는 인물이 소리가 나는 나팔을 불었을 때, 그건 곧 어떤 소리(행위)를 내는 거예요. 현실을 향해서. 그때 토끼가 입에서 알 수 없는 유동물, 살 덩어리(나팔을 분 인과작용의 결과물이 아니라 뜻밖의 알 수 없는 모호한 어떤 것을)를 토해 내고, 앞쪽의 주저앉은 꽃이 눈에 박힌 인물은 무언가 굉장히 놀란 듯한 표정으로 반응(정면을 향하기에 나팔에 놀란 것인지, 살덩어리 토사물에 놀란 것인지, 정면의 현실을 보고 놀란 것인지 알 수 없는)을 하면서, 이 셋의 관계가 한 장면을 통해 보이게 됩니다.

? 정: 세 인물이 분명한 역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이 작품이 더 재미있는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 인물의 등장과 역할에 더불어 그들의 시선에 의미가 있으면서 독특하게 처리된다고 느껴져요. 한 곳을 볼 때도 있고 서로 다른 곳을 볼 때도 있는데, 특히 꽃이 눈에 달린 인물은 항상 정면을 응시하는 인상이 있기도 하고요. 그런 시선을 배치하는 데에 의도하신 바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 샛: 이 그림에서 구체적인 시선 배치에 의미를 두지는 않았어요. 그렇지만 제가 인물을 배치해서 그릴 때 보통 정면을 보고 있는 인물보다 화면 바깥을 보고 있는 설정을 주로 하거든요. 사실 정면을 응시한 작품이 몇 작품 없을 거예요. 여기에 부연설명을 하자면, 시선이 바깥을 향하는 것은, 그림 안에 있는 인물들이 어떤 사건(그림 밖)을 방금 맞닥뜨린 상황에 대해서, 그 화면 밖의 어떤 상황에 주목하게 하려고 도상들의 시각이 밖을 향하고 있습니다. 사건은 그림 내부가 아니라 외부의 개입에 의해서 발생하는 거죠.

? 정: 네, 그러면 화면 밖의 이야기가 바로 서술되지는 않은 이야기에 포함되는군요. 얼굴에 꽃을 가진 인물이 정면을 본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사실 그게 꼭 정면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 샛: 그렇죠. 그 인물은 시선 자체가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꼭 어딜 본다고 할 수가 없어요.

? 정: 그 인물과 꽃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보죠. 꽃을 선택하신 이유나 의미가 있을까요?

? 샛: 꽃은 제가 작업 초반, 그러니까 첫 개인전 할 때부터 계속 등장해 왔어요. 당시 ‘위장(2001)’ 시리즈 작업을 하면서 잡지 위에 꽃 이미지가 배경이었죠. 잡지를 보다가요, 왜 우리 어릴 때 벽을 보면 벽지 무늬를 따라서 눈을 훑다가 어떤 모양을 만들어 내잖아요. 자기도 모르게. 그런 거 많이 했었지요. 어느 날 대학원 실에서 꽃이 만발한 잡지를 보고 있었는데, 어릴 때처럼 그 안에 어떤 이미지가 보이는 거예요. 꽃나무의 작은 꽃들이 만들어내는 형상. ‘아, 저게 눈 같구나, 코 같네…….’라는 생각이 들었고 뚜렷한 사람 형상으로 보였죠. 그때 작업에 대한 발상을 처음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위장(2001)’ 작업과 ‘중독(2002)’ 작업은 프린트물 위에다가 물감을 아주 얇게 여러 겹으로 올렸어요. 잡지 인쇄할 때 보면 도수 별로 색이 올라가잖아요. 망점으로요. 예를 들어서 빨간색을 표현할 때 4도가 모두 찍히죠. 그중에 빨간색(마젠타와 옐로우)이 제일 많이 올라가게 되지요. 물감을 찍는 방식으로 마치 인쇄하는 과정처럼 표현했었어요. 그렇게 표현한 방식이 ‘위장’ 시리즈였고, 또 꽃 이미지 위에 사람이 보호색으로 위장한 듯한 바로 그 표현 방식이 그림의 내용으로, ‘위장’ 시리즈에 함의 되었지요. 중독 작업에서 꽃은 인공적인 자연, 인공화원, 이런 개념이었어요. 그 후 ‘서커스, 오! 서커스(2004)’ 시리즈와 ‘봄날은 간다(2006)’ 시리즈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아래로부터의 봄(2008)’ 개인전 때부터 그 인공화원의 가짜 꽃, 화려하고 사람을 현혹한는, 실제로는 향기가 없지만 향기가 날 것만 같은 꽃을 눈에 올려놓으면서 시선을 없앴어요. 화려한 것만 쫓는 사람들, 실체를 보지 않고 자기 욕망대로만 보기 때문에 아예 시선 자체가 없는 그런 모습을 표현하게 된 거죠.

? 정: 좀 더 구체적으로 상징화 된 때가 그때부터네요.

? 샛: 네

이야기 part 2: 도상과 유쾌한 비극성

? 정: 그럼 여기서 남인숙 선생님께 여쭤 보겠습니다. 선생님 보시기에 이샛별 작가님 작업의 철학적인 배경과 더불어서,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세 인물과 그들의 시선, 꽃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 남: 일단 작가는 일차문헌이죠. 작가의 의도가 그렇다면, 보는 사람들이 참고해서 정말 그런가, 내가 느끼는 건 왜 다른가, 이런 걸 생각해봐야 되는 그런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에 대해서 특별한 제 생각은 없어요. 작가가 일차문헌이니까요. 다만 그림을 감상할 때 제각기 여러 의미해석이 가능하고 ‘작가가 왜 이걸 썼는가?’ 하고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방식을 낯설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죠. 대체 이 작품에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 여기서 중요한 팁을 하나 드리자면, 이샛별 작가의 작품을 쭉 보다 보면 도상적으로 중심이 되는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 도상에는 곧 세 인물 혹은 두 인물, 그리고 아직 뭐라 규정되지 않은 살덩어리가 있을 수 있겠죠. 사실 이걸 보자마자 의미파악이 된다는 건 어렵지요. 그래서 여기서 의문을 제기해 보는 거예요. 그림마다 등장하는 주요 인물, 즉 도상에 대해서. 그러면 거기서부터 문제를 해결해 가볼 수 있는데, 가만히 보면 그 도상의 인물들은 사실 약간 코믹해요. (웃음) 작품이 전체적으로 주는 진지한 느낌 때문에요. 웃지는 못하겠는데 내심으로 코믹한 감이 있는 거죠. 아마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봐요. 작품의 전체 분위기는 코미디가 아니므로 정확히 말하기는 좀 그런데, 츄리닝맨과 또 다른 도상들을 보면 그런데도 뭔가 살짝 우스운 거죠. 이 부분을 요약해서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각각의 주요 도상들이 정서적으로 던지는 질문들이 있어요.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해서 대체 이 작가가 무엇을 그렸지? 그런 의미를 쫓다 보면 마지막에는 작가의 궁극적 목표지점을 이해할 수 있는 지점에도 도달하게 되죠. 하지만, 작품에 대한 각자 해석은 일단 자유롭게 해도 된다고 봅니다. 답은 없지만, 궁금증의 마지막쯤에 작가가 했던 말을 참조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저는 작가 말을 100% 수용 안 해도 된다고 봐요. 작품을 해석하는 측면에서 참조는 할 수 있겠지만요.

그림을 보면 주요 도상으로 트리플 내지는 더블, 아니면 또 혼자 있는 도상들이 등장하는데요. 작가의 입장에서 이런 핵심 도상을 가지고 자기 작업을 이끌어 가는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이샛별 작가의 그런 해결책을 저는 굉장히 높게 평가해요. 그러니까 철학적인 배경은 뭐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고 저렇게도 설명할 수 있는데, 저는 정신분석학을 베이스로 접근합니다. 실존철학도 가능하고, 현상학도 가능하고, 사실은 그런 것은 작품에 접근하는 방식 나름이라서, 논리적으로 정확성만 있으면 해석은 다 열려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역시 이샛별 작가의 작품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은 건 자기 주요 도상을 가지고 작품을 끌고 간다는 것. 그 도상이 언제나 질문을 제기한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제가 평론에서도 잠깐 언급하지만, 작품에 감각적인 매력이 있어요. 사실 비주얼적인 매력이란 작가에게 너무너무 중요하거든요. 작가들 측면에서 보면 자기가 다루는 재료로 보는 사람을 어떻게 매력적으로 현혹할까 하는 그런 고민이죠.

마지막으로 꽃에 관해서 살펴보면, 이 점이 상당히 아이러니인데, 작가가 자기 도상 중 하나를 꽃을 이용해서 눈을 가렸잖아요. 사실 작가는 우리 눈을 가리려고 하는 거죠. 그리고 사실 절묘하게 완전히 가리고 있는 것 같지만, 그 가리개가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깨우쳐 주는 질문을 다시금 불러일으키고 있어요. 이 점에 제가 특히 이샛별 작가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입니다. 개인적으로요.

? 샛: 제 점수는요? (웃음)

? 남: 비밀이에요. (웃음). 작가연구나 작품 연구, 양식 연구를 하다 보면 그런 게 있어요. 현재 컨템포러리 대가들 작품도 그렇고 모든 작품이 소중하긴 마찬가지이지요. 그런데 보면 작품에 일관성이 없는 분들도 계시고 아니면 또 너무 자기의 어떤 스타일을 고집하거나 주요 도상들을 끌고 가다 보면 정말 지루해지는 경우도 있어요. 작품에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게 사실 어려워요. 쉽게 이야기할 부분은 아닙니다. 많이 어려워요. 우리 스타일이 변하기도 어렵잖아요. 작가가 붓질 한번을 변화시키는 것도 사실 어려워요. 자신의 양식이 거기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제가 이샛별 작가에 대해서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지요. 제가 너무 극찬하는 것 같은데, 그럴 의도는 아니고(웃음). 작품에 약간 코믹하면서도 뭔가 부딪히는 정서가 동시에 있어요. 전반적인 분위기는 진지한 것 같은데 그런데, 이 인물의 형상이라든가, 이런 부분들이 저는 코믹하게 느껴지거든요. (웃음)

? 정: 저는 전체적인 느낌에 약간의 공포스러움이나 장엄한 부분이 있어 보이고, 인물의 자세나 구도가 명화 한 폭을 보는 것처럼 클래식해 보이기도 해요. 그러면서도 상당히 현실적인 복장, 츄리닝을 하고 있지만 아무리 봐도 현실의 인물은 아닌, 그런 모습에서 공포와 코믹한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되기도 하네요.

? 남: 네, 아이러니하죠. 그러니까 사실 쉽게 얘기했지만, 이러한 상징적인 자아하고, 내가 생각하는 나하고, 그 자아를 파괴하려는 무엇 하고는 사실은 비극적인 관계에요. 이게 종합적일 수가 없거든요. 인간이 그래서 비극적인 거죠. 만약 그 비극에 초점을 맞추면, 그리스 비극론이 될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이 현대는 그렇지 않거든요. 우디 앨런처럼 굉장히 유쾌하게 비극성을 터치할 수도 있을 테고요. 사실 그런 방식의 표현은 제 경험으로는 너무너무 어려운 작업인데, 누군가가 그런 표현을 해주고 있다면 그건 땡큐죠. (웃음)

그리고 역시 제가 작품의 제일가는 덕목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한 가지는 관객을 꼬셔야 한다는 거예요. 그게 작가들의 기본 덕목 중 하나라고 봐요.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절시킬 것 같은, 그런 관객을 흡입하는 요소가 있어야 하거든요. 따라서 이샛별 작가의 그런 흡인력이 일차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또 그림의 문법에서 자기 도상을 끌고 간다는 것, 그 점이 또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이야기 part 3: 구조적 폭력, 그리고 서스펜스

? 정: 작품을 보면, 전반적으로 그림 일부분에 스토리가 있는 듯한 장면이 많이 등장하고, 서로 연관성 없어 보이는 상황들이 가득하게 그려져 있어요. 때론 만화처럼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장면도 있고요. 그런 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 샛: 평소에 단어나 문득 걸리는 것들, 책을 읽거나, 누가 얘기를 하다가 내뱉은 단어라든가……. 그중에 딱 맘에 잡히는 단어를 쭉 적어놓고, 그와 관련된 이미지를 많이 모아서 계속 봐요. 그렇게 이미지를 관찰하고 고르다가 선택을 해서 배치를 합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와 단어와 제가 가진 느낌이랑 딱 맞는 순간 스케치를 시작하죠. 작품을 위해서 이미지를 많이 수집하고 또 실제로 그대로 그리기도 합니다. 제 안에 많은 것을 서술하려는 어떤 욕망이 작품에 많은 스토리가 들어가게 그리게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 정: 현실에서 차용되는 많은 이미지가 재해석 되어서 사용되고 있네요.

? 샛: 보통 주요 모델을 촬영하는 작업은 직접 하고, 또 배경의 어떤 부분도 직접 촬영해서 사용하지만, 배경의 70~80%는 인터넷을 통해 검색한 이미지에요. 검색할 때 연쇄적으로 검색되는 단어를 따라가는 경우도 있고요. 예를 들어 ‘폭발’을 치면 폭발 이미지만 나오는 게 아니라, 에로틱한 것도 연관되어서 나오게 되거든요? 그럼 또 다양한 이미지를 따라서 사고할 수 있죠.

? 정: 그렇군요.

? 샛: 한 가지 특정한 부분은, 그러한 이미지가 화면에 배치될 때 오히려 현실의 이미지들은 현실이 아닌 것처럼 탈색되거나 축소되거나 변형되어 등장하는 거죠. 주로 그런 장면들은 배경에 조그맣게 깔리는데, 이미지가 폭력적인 경우가 많아요. 실제로 뉴스에서 나오는 폭력적인 장면도 있고, 개인의 일상에서 출발해서 떠도는 이미지도 있고요. 그런데 사실은 그런 사실과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그렇게 배치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게 왜곡되거나 작게 표현한 이유가 있어요.

사람들은 자기 눈앞에 닥친 어떤 폭력에 대해서는 굉장히 빨리 반응을 해요. 그리고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어떤 인간적인 동정심을 재빨리 끌어낼 수도 있지요. 그런데 실제로 다른 종류의 엄청난 폭력, 사회 구조적인 폭력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기도 해요. 그게 나랑 너무나 먼 현실로 느껴지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세계 어느 곳이나 비슷하죠. 그래서 사람들이 어떤 직접적인 폭력에 대해서는 빨리 반응하지만, 정말 무시무시한 사회 구조적인 폭력에 대해서나 보이지 않는 폭력에 대해서는 왠지 나랑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고자 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러한 직접적인 폭력의 모습은 배경으로 배치함으로써 눈앞의 공포와 폭력에 대한 이야기는 던지되, 그것이 사실은 그들이 느끼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더 중요한 구조적인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죠.

? 정: 공포나 폭력을 작품의 소재와 주제로 삼게 된 이유에는 어떤 과정들이 있었을까요?

? 샛: 저도 예쁜 걸 좋아하는데, 싫어하는 거 아니에요(웃음). 혹시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이랑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읽어보셨어요? 제가 읽었던 인상 깊었던 책을 예를 들어 설명을 하자면요. 읽고 나서 저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어요. 완전히 홀리게 할 만큼 재미있었어요. <백 년 동안의 고독> 같은 경우는, 가족사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다 마술 같아요. 일상적인 일들이 벌어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딸내미가 승천하고, 뭔가 판타지 같은 이런 상황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묘사하면서 시대 상황과 함께 쭉 서술되거든요. 저는 그 책을 읽으면서 ‘아, 나도 이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는 우주인-그러니까 천사가 재림하는 순간을 사람들이 차를 운전하면서 쫓아다니는 거예요. 어떤 정면에서 벼락이 쳤을 때 그걸 맞는 사람은 몸에 변화가 생기는데요. 죽기도 하고, 신체적으로 불편했던 사람이 낫기도 하고, 무언가 예기치 못한 것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니까 어떤 은혜를 받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지요. 그렇게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 쫓아다니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은 그걸 맞아서 얼굴이 없어지게 되지요. 줄거리는 생략하고요. 내용이 폭력적이면서도 이야기 구조를 따라가다 보면 너무 자연스럽게 빠져들어요.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굉장히 섬뜩하면서도 재미있는 요소가 있거든요. 그런 느낌을 좋아했어요. 소설을 보면서 이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생각했었지요. 사실 알고 보면 그런 이야기는 동떨어진 초현실 세계 속에서가 아니라 우리 현실의 이야기에요. 물론 사건이 벌어졌을 때 책에서는 얼굴이 없어지지만, 현실에 대입해보면 구조적인 폭력 앞에서 아예 자기 자신 자체가 없어지지요. 그 현실을 책에서는 그렇게 풀어낸 것이고요.

?남: 저도 많이 공감하는 부분이에요. 우리가 그게 교육이든, 사회 철학이든, 현실에 대한 오해가 깊었던 거죠. 원래는 그런 마술적인 일들이 상시로 일어나는 게 우리 현실인지도 모릅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이 허상을 가지고 살고, 또 그렇게 교육을 받고 있어요. 또한, 우리 교육이 그런 걸 강화하는 교육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우리가 안전하게 산다고 믿는 거죠. 마르케스가 말하고자 한 점도 그러한 백 년 동안 고독했던 것들에 대한 발언을 소설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거죠. 사실 그게 현실인 셈이에요. 그러나 현실에 드러나지 않은 고독을 작품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는 사실 많아요. 그러한 소재는 많은데 이렇게 시각화된 화면에서 그런 걸 만날 수 있다는 건 우리 인생의 기쁨이죠.

? 정: 그러면 이런 공포나, 현실적인 폭력이 이샛별 작가님의 작품 소재군요.

? 남: 흠, 소재라기보다는 시각에 가까운 것 같아요. 현실을 그렇게 보고 있는 것이니까요. 구조적인 폭력이라는 것은 예를 들어서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어느 날 어떤 인물이 삼청 교육대로 사라진다거나 하는 식으로 자기가 모르는 사이 제거되는 경우가 있었다면, 그러한 일이 그렇게 특별한 시대에 특별한 사건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이샛별 작가의 작품에서 상징화했듯이 상징화, 또는 현실에 구조화되지 못한 것이거나 아니면 자기 혼자 착각 속에 살다가 파괴되는 것이라거나 이런 게 상시로 인간의 조건으로, 사고와 현실에 구조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죠. 그래서 폭력은 우리의 존재 조건에서 보면 조건 자체인 것이고, 상징화 과정에서 그렇게 제거되는 부분이 있고 그 제거된 부분 때문에 우리는 시달리게 돼요. 그냥 잊어버리면 되는데, 그것 때문에 시달려야 되는 게 그게 운명이니까. 그런데 그렇게 인간을 구조적으로 보면 그런데요. 또 이런 구조가 확대되면 사회구조가 돼요. 우리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데 이 구조 안에 원천적으로 이런 요소가 있으니 그런 면에서 소재는 아니고 삶의 조건인 거죠. 이 폭력이라는 것은.

? 정: 영상작업 제목이 ‘서스펜스’에요. 제목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야기하던 맥락이 느껴지는데요. 영상작업에 관해서 얘기를 좀 해주시겠어요?

? 샛: 영상작업은 제가 한참 히치콕 영화를 볼 때 드로잉 한 작품이에요. 그리고 2009년에 전시했었고요. ‘서스펜스’ 작품은 하나하나 개별 드로잉인데 뭔가 스토리가 이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죠. 아마도 영화를 보고서 그런 느낌으로 작업을 했으니까 그랬을 거예요. 실제로 영화 장면도 등장하고요. ‘이 드로잉을 다른 방법으로 재미있게 더 많이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다가 영상으로 나오게 된 거예요. 일단, 히치콕이 이야기하는 ‘서스펜스’란 개념에 관해 얘기할 필요가 있는데요. 서스펜스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탁자 밑에 시한폭탄이 설치된 장면이 나와요. 그리고 째깍째깍 시간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고요. 영화 속 인물들은 알지 못하고 각자의 역할들만 열심히 하죠. 그냥 일상처럼 폭탄이 있는 공간에서 돌아다니고 있어요, 조금 있으면 폭탄이 터질 텐데 말이죠. 그러다가 갑자기 다른 우연한 상황으로 모두 그 장소에서 퇴장을 하죠. 관객이 안심하는 순간, 인물 중 한 명이 그곳에서 뭔가를 두고 온 거에요. 곧 폭탄이 터질 그 장소로 돌아가죠. 관객은 그 모든 걸 지켜보면서 ‘아, 저게 곧 터질 텐데.…….’ 하고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태, 그런 상태가 바로 히치콕이 말하는 서스펜스입니다.

전 그 느낌으로 이 드로잉을 했고, 그 느낌을 영상 안에서 어떻게 표현을 할까 하고 고민을 하다가 <서스펜스> 영상을 만들었어요. 배우들이 무척 느리게 움직이는데, 아마 사람들은 그걸 읽기에 바쁠 거예요. 어디가 움직이고 있나? 아니면 그다음 내용이 어떻게 전개되고, 어떻게 변하나 하겠지요. 일단 그렇게 영상(영상1)을 만들어 놓고 나중에 그 영상 속의 남자 배우(영상2)를 초상화처럼 촬영했어요. 그리고 서로 마주 보게 설치해놨어요. 그렇게 되면 결국 드로잉 안의 그 남자가(영상2) 상황 밖(영상1)에서 다시 자기를 보고 있는 상황(영상2)이 되는 거죠. 그림 안에서 연기하는 그는(영상1) 어느 순간에 정면으로 향하면서 자기의 시선과 마주치게 되죠. 그림 안의 자기 모습을 보는 것이 서스펜스의 긴장감처럼 감지되도록 남자 또한 의미심장한 눈빛을 하고 있죠. 관객은 자기가 상영되는 영상(영상1)과 그 속의 자기를 보는 남자(영상2) 사이에 갇히게 되죠. 두 영상을 한 번에 볼 수는 없어요.

이 작품을 촬영할 때 배우들에게 천천히 연기하라고 했어요. 눈도 천천히 깜박이고, 움직이는 것도 최대한 천천히요. 그리고 편집할 때 더 느리게 만들었죠. 전시장을 휙 둘러본 사람이면, 그냥 고정된 장면처럼 보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요. 움직임이 거의 안 느껴지니까요. 그런데 움직임을 포착하는 순간에 그 화면 안에서는 그 움직임이 오점이 되는 거예요. 낯선 어떤 점처럼 작품에 설치된 트릭에 그때부터 주목하게 되죠. 아주 천천히 움직이지만 보이지 않은 거대한 음모처럼 서스펜스의 긴장이 느껴지게끔요.

? 정: 마지막으로 관람객의 관점에서 작품을 감상할 때의 주안점, 힌트를 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감상할 때 제목과 작품을 좀 더 연관성 있게 감상하면 도움이 될까요? 작품의 제목마다 무언가 제시되는 게 있어 보이는데 그렇게 관람하면 포인트가 될까요?

? 샛: 예, 그렇죠. 제목이랑, 특히 전시 제목이요. 전체를 묶어주는 전시제목이 중요하거든요. 제목 정하는 데 오래 걸려요. 후보를 많이 놓고, 한참 심사숙고한 후에 정해요. 전시 제목은 전체 이야기를 포괄할 내용으로 정하기 때문에 키포인트가 되고, 그다음 각 작품의 제목을 염두에 두고 작품 안의 이야기를 연결해서 보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인터뷰 이후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수정했습니다. (이샛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