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고 독특한 세계다. 나무는 붉고, 사람들은 추하며, 내장은 밖으로 튀어나와있다. 불안과 잉여와 불신이 넘치고 흐르는 디스토피아. 그들은 결코 우리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법이 없다. 부딪치고 싶지 않은 이미지를 맞닥뜨렸을 때의 불편함, 예상치 못한 장애물과 충돌했을 때의 불유쾌한 이물감, 이것이 관객이 이샛별의 작품과 조우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그러나 그녀의 그림이 불편한 감정을 수반하는 이유는 이 상상력의 근원이 온전히 다른 별나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세상으로부터 기원한 아득한 기시감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샛별의 작품은 초현실적이다. 초현실의 기원이 꿈으로부터 비롯된다면, 그녀의 꿈은 달콤한 추억의 환기가 아닌, 악몽에 가까운 모호한 영역이다. 그런데 그녀가 설계한 이 꿈의 세계는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싶다기보다는 도리어 강력한 호기심으로 시선을 붙든다. 그림의 배경은 오브제의 재현과 과장, 그리고 연결 동선 상의 생략과 확대해석을 포함한다. 그녀는 사람들이 모두 떠난 적막 속 스타디움의 계단, 철거 직전의 공장부지, 지하 창고 등 일상적이고 남루한 건축물에 은근슬쩍 의외의 요소를 끼워 넣는다. 수영장 슬라이딩 슬로프, 그랜드 캐년 등 예상치 못한 판타스틱 요소들이 일상의 풍경에 연결되면서 혼란은 시작된다. 이런 극단적 분위기의 조합은 작가의 독특한 작업 과정에 의해서 탄생하게 되는데, 작가는 ‘개발’ ‘도살’ ‘파괴’ ‘’폭발 등의 키워드를 인터넷이나 뉴스기사에서 검색하고 결과물로 배출된 ?이미지를 그림의 배경으로 묘사한다. 이 단어들이 도출시키는 이미지는 종종 상식적인 이미지의 함의를 벗어난다. ‘폭발’을 검색하니 뒤따르는 파라다이스 등, 이런 검색상의 ?오류와 불일치는 이샛별의 작품을 읽는 중요한 힌트로 작용한다. 말끔하게 정돈된 싸움판, 폐허의 공간을 딛고 일어선 매끈한 파라다이스, 이샛별이 바라본 사회는 기형적인 결핍과 소멸이 잠재되어 있다. 문제는 이런 급속한 사회 발전의 과정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적으로 다가왔다는 것이고, 희생자 상혼의 잔해가 이 사회에 부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녀는 이 세상에 존재했었으나 사라진, 아직 존재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소멸이 예정되어 있는 이면의 스토리에 대해 말하고 싶어한다.
이샛별의 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애처로울만큼 못생겼다. 묘하게 비틀리고 일그러진 그들의 생김새와 무표정한 얼굴, 조그만 블랙홀 같은 눈은 섬뜩한 인상을 남긴다. 사람의 몸에 토끼와 개의 얼굴을 합성한 생명체도 그녀의 작품에 단골로 등장한다. 2008년 클로즈업된 얼굴을 포착한 <스무 개의 그림자>시리즈에서는 인물의 눈이 숫제 꽃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이들은 현상의 실재를 그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환상으로 해석하는 현대인의 초상이다. 가해자이자 희생자이며 타인이자 자아인 이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점에는 연민과 혐오가 혼재되어 있다. 또 그녀의 작품에서 내장이나 늘어진 살덩어리처럼 보이는 알 수 없는 핑크색 물체가 축축 늘어져 인물의 얼굴에서 흘러내려 산을 이루고 냇가를 형성한다. 이 기분 나쁜 오브제는 <분리>(살덩어리를 풍선처럼 불고 있는 사람), <구성물>(살덩어리가 홍수를 이룬 공간)처럼 버젓이 작품의 주요 테마가 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실재의 그림자> 시리즈에 등장하는 존재는 도플갱어이다. 이들은 한 공간에 공존할 수 없는 숙명의 법칙을 위해 꽃 가면이나 동물의 탈을 쓰는 변화를 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애써 외면하는 나의 다른 모습, 어둡고 비틀리고 나약한 얼굴을 나란히 세워두웠다. 한편 <귀환>은 이런 잉여적 인물들의 집합을 통해 그녀 작품 세계의 키워드를 집약한 작품으로, ‘사회에서 제거된 어떤 것들은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작품에서 다소곳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등장인물들은 그로데스크한 가족사진 그 기묘하고 남루한 행색이 관객으로 하여금 죄책감을 전가한다.
이샛별 작가의 작업은 몇 가지 상징적인 오브제들을 탐구하는 형태로 진행되어오다가 최근 서사적인 요소를 강화했다. 올해 전시된 작품 <공백, <통합자>,<구성물>등을 살펴보면, 인물의 제스처, 배경의 구조, 서사의 서스펜스 등 시간적 공백을 두고 각각 실험되어 왔던 요소들이 비로소 하나의 퍼즐로 짜 맞추어진 느낌이다. 마치 흘러가는 필름의 한 순간을 엿본 것 같은, 생략된 앞뒤 맥락에 주어진 잠깐의 틈으로 주어진 찰나의 포착이 눈에 띈다. 배경과 제스처의 표현은 더욱 능수능란해졌고, 인공조명의 강약으로 추가로 서스펜스적인 분위기는 더욱 강하게 연출되었다. 여전히 관람객을 비스듬히 바라보는 그녀의 창조물들, 소외와 소멸의 흔적에 주목하는 이샛별식 동물의 왕국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그녀의 일그러진 영웅들은 시간이 흐르면 정면을 응시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2010.12 월간 퍼블릭아트 -조숙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