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경우 원하는 시간을 또 그 시간에 보냈어야했던 것들을 재구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비록 구성했다 하더라도 매번 뒤늦었다는 것을 다시 인지할 뿐이다.
어린시절부터 나를 둘러싼 풍경은 그저 본래부터 그러했다는 안정감을 어느 순간 상실하며 아주 우연한 풍경이 나를 둘러싸고 벗어날 수 없다는 불안을 작가의 그림에서 느껴야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마치 누군가 네 엄마는 사실은 네 진짜 엄마가 아니었다고 일러준다면, 그때 일어나는 현기증과 공포와 같은 기분은 또 어떨까.
매순간 우리는 우리가 지나온 시간 또는 사건들을 기억하고자 노력한다. 그런 노력은 그러나 매번 노력했다는 자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 경우가 허다하다. 작가의 그림이 주는 인상은 그러한 눈부시도록 화사하고 또 코가 찡하도록 향을 발하는 꽃과 꽃보다 아름답다던 사람들 또 그 사람들보다 더 진한 향기와 매력을 발휘하는 계급장들 권위들. 꽃과 사람과 계급장이 흐드러지게 핀 모습이 곧 우리의 기억 한줄기를 점하고 있던 세계이다. 꽃으로 가득한 세계는 일종의 무속적 염원의 세계거나 이상향으로 해석되기 십상이다. 우리는 뿌리칠래야 뿌리칠 수 없는 강렬한 추억과 회상의 파도 앞에 좋았던 호시절을 떠올리는 것이다. 물론 그 시절은 결코 실재하지 않았던 세계였고 다만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그리워하던 곳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아무리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름답게 채색해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시절을 예찬하거나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 시절은 자신이 만들어 낸 허구의 세계임에도 너무도 선명하게 실존하게 된다.
우리가 보내온 시절과 현실들을 찬찬히 기억하고 기록하고 형상화하면서 우리 자신도 어떤 참된 인식과 모습에 다가가고자 노력한다. 작가의 그림이 주는 미덕은 바로 우리가 보내온 한국의 최근세사를 강렬하게 환기시킨다는 점이다. 또 그러한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세계를 바라보고 또 우리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는 계기를 준다는 점이다. 그의 그림은 아름답고 색상은 처연할 정도로 강렬해서 마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후각과 청각에도 어른거리게 하는 형상의 힘을 보여준다. 꽃은 더 이상 꽃으로서만 머물지 않는다. 사람들의 얼굴은 작가 자신의 초상이자 우리들의 아름다웠던 그러나 한편으로는 불안과 공포의 권위를 가로질러 살아남은 자들의 초상이기도 하다. 또 계급장들은 스스로에게 부여할 수밖에 없었던 이상한 질서와 권위가 요구되던 시절의 유산처럼 느껴진다. 작가가 매순간 시큼하게 코를 찌르듯 꽃과 사람과 군사문화가 어울려있던 호시절(?)의 성장기를 되돌아보는 과정이 그림을 통해 누군가에게는 전달된다. 그 누군가는 아마도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는 시절의 풍광을 눈앞에 펼쳐 보이며 사계절을 순환하며 지침 없이 흘러가는 생의 물길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어떠한 권위도 권위로서 생사여탈권을 발휘하는 세계, 우리는 그런 세계를 기억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있었던 한때의 혈기 방장한 자유의 시절을 범접할 수 없는 힘과 이미지로 사방이 꽉 막히고 사지가 꽁꽁 묶여버렸던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작가는 자꾸만 되돌아보는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고는 꽃만 보지 말 것을 또 사람만 보지 말 것을 아니 힘과 권위만을 보지 말 것을 이야기한다. 그럼 무엇을 보란 말인가? 작가가 환기시키려는 것이 무엇인가?
어린시절 성장기에 보아온 동두천 미군기지와 하늘에 그려놓은 전투기의 비행들, 그리고 거리에 나선 군복에 예쁘게 반짝이는 계급장들. 꽃보다 더 예쁘게 눈길을 끌었던 계급장들에 대한 좋았던 기억들. 그러나 사춘기를 지나 성인의 문턱에서 점차 불길한 죽음의 힘을 상징하는 것들로 변해버린 이 군사문화의 별들. 우리 주위에서 무의식으로 그러나 자주 마주할 법한 사람들의 초상들. 화려한 꽃들이 만발한 봄날의 화려한 외출. 그리고 군인들. 사람들.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