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 오! 서커스” – The Circulation of Circus”

서커스가 원, 순환이라는 의미도 품고 있을뿐더러 우리 근대사 자체가 서커스처럼 과잉, 키치, 과시적 양상을 띠면서 악순환 되어온 성격을 비유.

화려한 꽃들이 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큐브 속으로 들어가면서 관람객은 가상의 인공화원으로 진입하게 된다. 큐브 속 다섯 면(벽면과 천장)은 한 면마다 다른 꽃들로 뒤덮이게 되는데. 색색의 이 꽃들은 몇 송이의 꽃들이 여러 개로 복사되어 반복, 재배치되는가 하면 다른 종류의 잎사귀와 꽃잎이 서로 몸체를 구성하면서 하나의 종처럼 존재하기도 한다. 그것들은 생명의 황홀과 향기, 매혹적 자태를 지닌 천연의 꽃들이 아닌 자연의 욕망을 모방하는 조작된 꽃이며 통제되고 길들여진 다섯 개의 화원을 만든다. 그곳은 우리의 가망 없고 전망 없는 블랙홀 같은 욕망을 향한 유혹. 자연을 양육하고 구성할 수 있다고 믿는 허욕의 공간이며 사이비가 진정성을 우롱하고 가짜가 진짜의 무력함을 폭로하는 중첩된 모순의 공간이다.

근대적 개발의 역사는 이 뻔뻔하고 조작된 인공의 화원처럼 화려하고 번창해보이나 기계적으로 육화된 테크놀로지의 공간과 그것이 보장해 주는 안위와 행복은 브라운관 혹은 스크린 속의 낙원 같은 조작된 판타지일 뿐이다. 과잉으로 불거지는 뻔뻔한 색조, 기계가 생명을 대치하거나 혹은 저희들끼리 난교를 벌이며 이종 교배되는 불륜의 시대, 기이한 번식력으로 자궁을 훼손하며 대지를 오염시키는 변종의 공간 속에 인간은 설 곳을 잃은 채 가짜를 소유하는 것으로 진짜에 대한 열망을 대체할 뿐이다.

판타지 속의 또 다른 판타지인 서커스는 과잉의 몸놀림으로 시각적 쾌락을 선사했으나 근대의 진행과 함께 자연의 육체가 아니라 사이비 육체들이 위험한 곡예를 대신해 주면서 서커스의 주인공들은 문명의 경계 밖으로 소외된다. 그들은 더 이상 스펙터클을 생산하는 주체가 아니며 쾌락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전복된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상징으로 작용한다.

인공의 화원인 이 허상의 공간이 경계를 넘어서 중심과 주변의 전이가 이루어지는 유쾌한 상상의 공간으로 작용한다면 음성적으로 남아있는 강요된 욕망과 황폐한 권력을 통제하는 사유는 회복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