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역사에 대한 비장한 기록
(2006 pre-국제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평문)
이샛별은 30대의 젊은 여성작가 중에서도 독자적인 자기색깔과 방법을 지닌 작가이다. 그녀의 작품은 아름답다. 그러나 만개한 꽃을 전사한 바탕위에 정밀하게 그려나간 이미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아픔다움과는 거리가 멀고 어진지 을씨년스럽고 기괴하다. 꽃밭은 이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잠식하기도 하고, 그 기괴한 이미지가 꽃밭을 조금씩 점령하며 일순간 화려한 모조화원을 초현실적이며 묵시적인 공간으로 바꿔놓기도 한다. 여기에서 시각적으로 현란한 아름다움은 껍질에 불과함이 드러난다. 이 역설적 국면은 꽃밭뒤에 숨은 여성의 이미지에 의해 분명해진다. 그것은 몸짱이나 얼짱과 같은 신조어가 만들어내는 허구의 여성이미지가 실제로는 현실을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꽃으로 위장된 여성의 몸은 미스코리아 신드롬과 같은 것에 의해 제조한 대중문화의 논리를 반박한다. 여성의 이미지는 박제된 정물, 즉 서양에서 말하는 ‘죽은 자연’이 아니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에서 자지러지는 꽃의 황홀경은 인간의 비극을 감추은 위장막이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무수하게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초상이 뒤엉겨 있다. 2004부산비엔날레 현대미술전에서 이샛별은 질곡으로 점철된 한국현대사의 한 단면을 마치 벽지처럼 네벽과 천장을 도배한 화원을 통해 보여준 바 있다. 그 작품에서 꽃은 현실을 가리는 장막이자 진실을 은폐하는 거짓된 자연이다. 그러나 그 현란한 색채가 방사하는 유혹에도 불구하고 한국현대사의 파노라마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집단초상 덕분에 작품의 주제를 놓쳐버리지는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 아름답지만 그 속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이야기가 작게는 ‘여성’을 제조하는 사회제도의 억압으로부터 크게 현대 한국사회의 온갖 사연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개인과 역사에 대한 비장한 기록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