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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이 사라진 밤하늘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 뒷마당에서 엄마가 심은 과꽃 향기를 맡으며 은하수를 봤던 기억이 난다. 바람은 달게 볼을 간질이고 풀벌레 소리는 불규칙적으로 귀에 닿고 별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나는 어렸고 엄마도 지금의 나보다 어렸다. 간혹 부모님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볼 때 어린 부부의 지나간 시간과 회한과 고단함을 생각하며 사랑인지 연민인지 향수인지 모를 감정이 가슴에 구멍을 뻥 뚫는다. 그리움의 잃어버린 장면, 나의 순수, 진짜 잃어버린 보물, 자신의 본질에 대해 더 깊고 중요한 무언가가 감춰져 있다는 생각, 그것은 정말 있었고 되찾을 수 있을까?

나의 과거 이미지를 통해 느끼는 아득함과 그리움은 충만했던 지난날의 한 시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환영을 그리워하는 것이리라. 내가 보고 있는 그 사진 너머에 있는 어떤 공간. 그곳은 진짜 보물이 숨겨진 장소가 아니라 애초에 텅 비어있었고 내겐 그렇게 결코 채울 수 없는 영원한 상실의 자리가 각인된다. 물론 나의 정신은 영악하게도 이런 상실과 부재를 견딜 수 없을 것이므로 아무리 고통스럽고 절망인 것이라 해도 그 의미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믿으며 안도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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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린 과학의 순교자 갈릴레이의 현실은 과학적 지식과 사실이 아니라 허구를 근거로 존재한다. 그는 그 사회에서 미친 자이며 사회는 틀렸다는 것이 증명될 때조차도 ‘정상’이다. 환상은 우리의 이런 현실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드는 보호막 역할을 해주기에, 우리에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과 보려 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난다. 보는 것은 허용되나 그 너머를 보는 매혹 자체는 우리가 진짜로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가장 욕망하는 드로잉>은 무언가 배제된 채 이렇게 완전해 보이는 세계, 완성되어 우리 앞에 제시된 현실 세계의 끝없는 반복을, 역시 반복을 통해 다른 가능성, 다른 사유, 다른 시간의 이접이 구성되기를 바라는 욕망에서 출발한다. “가장 욕망하는 것”이란 욕망의 끝, 욕망의 최정점 욕망이 아니다.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는 욕망의 대상은 존재하지만, 욕망의 실체는 없다. “가장”은 “당장”이라는 말로 교체될 뿐이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아니, ‘타인들은 내게 무엇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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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이 가장 큰 특징인 <가장 욕망하는 드로잉>의 이미지는 반복되면서 뒤집히고, 복제되고, 중첩되고, 쌍을 이루고, 반사된다. 반복이 거듭될수록 동일한 나를 목격하는 듯한 정체 모를 섬뜩한 감정이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연필 자국에 기입되고 배경은 홀로그램처럼 교란된다. 이미지들은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고 넷이 여섯이 되는 반복만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가 중첩되는 경계에서 다른 이미지를 생산한다. 원본 이미지는 동어반복을 통해 차이를 낳는다. 전혀 새롭지 않지만, 전혀 새로운 것! 반복은 자기 자신을 재생산한다. 자신의 동일성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반복함으로써 미세한 차이가 바늘처럼 예리하게 드러나고 뒤의 의미를 완전히 바꾸며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눈앞에 놓인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미지 너머를 보고야 마는 우리의 욕망은 인간의 조건이지만 이 저주받을 조건이 다른 공간을 창조할 틈을 준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반전이다.

완성에서 반복이란 없다. 완벽함에서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실패를 통해 반복은 이루어지며 반복의 차이를 통해서 다시 시도할 기회가 주어진다. 현재를 유지하려는 욕망은 세계를 조화로운 것으로 보게 하며, 현재를 변화시키려는 욕망은 세계를 아직 미완성으로, 불완전한 것으로 보게 한다. 불완전함은 창조가 가능한 가능성의 유일한 세계가 아닌가? 영화 <엣지 오브 투마로우>(Edge of Tomorrow, 더그 라이만 2014)에서 죽음을 피하려고 탈영까지 시도한 장교 톰 크루즈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강제로 주어진 의무를 운명으로 삼고 그 지긋지긋한 반복의 순간을 밟아나간다. 죽어야만 다시 리셋 되는 그의 시간은 적과의 전투에서 성공적으로 도달한 지점부터가 아니라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맨 처음부터 시작된다. 수천 번의 재시작을 반복하는 그는, 사무엘 베케트의 말처럼 실패하면서 점점 더 낫게 실패하게 되고 더 나은 실패를 위해 매번 다시 시도한다. 이것이 관성적으로 보는 것을 중지하고 환영을 넘어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삶을 처음부터 매번 다시 시작할 것을 요청하는 ‘가장 욕망하는 드로잉’의 전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