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 전시 주제가 “THE REAL” 인데 무슨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지 이야기해 주세요.

모든 사물은 고유한 의미를 획득하는 상징적 세계로 진입한다고 했을 때 그 현실세계는 완벽하지 않으며 완벽한 스토리로 역사를 구성해내기 위해 감춰진 구멍을 동반하게 된다. 그 구멍은 우리가 원하고 있지 않더라도 우리의 무의식속에 잠재되어 있으며 반드시 끔찍한 형태로 우리의 현재의 삶 속으로 침투한다. THE REAL이란 전시제목은 실재계라는 뜻의 라캉의 개념이며 실재란 상징화에 저항하는 부분이고 외상적 중핵이며, 우리 사회현실의 기반이 되기도 하며 동시에 그 현실을 훼손시키기도 한다. 외상이 아직 상징화되지 않고 남아 있는 한 그것은 실재계이며 주체의 중심에 자리 잡은 영속적 어긋남이다. 내가 작업을 하는데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부분과 일치하는 개념이기에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전시제목으로 가져왔다.

2. 작품 속 대상에 관한 이야기(인물에 대한 특징이나 선호하는 성별 또한 인물작업을 하며 어려웠던 점 등을 같이 이야기해 주세요)

내 그림 속에는 주로 사람이 등장하며 나와 닮아있다. 작업초기부터 내 얼굴을 등장시켜 작업을 많이 해왔는데 자주 그리는 모델이 나이다보니 지금의 형태처럼 진화해왔다고 할 수 있다. 동그란 얼굴과 살짝 덮인 머리, 구멍이 뚫린 듯한 눈동자 등 일률적인 표현 때문에 모델이 나와 친구들인데도 같은 인물처럼 보이는 효과 또한 있다. 그 인물들을 통해 한 개인이 존재하기 위해 제거한 어떤 것들, 그들이 진입한 사회와 구조, 그리고 억압된 기억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손에 잡히지 않으나 분명히 실제로는 존재하는 그림자(그것은 결국 ‘무’인 새와 전투기), 나무에서 죽은 잎처럼 축축 늘어진 살덩어리(혹자는 똥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잉여’이기에 그 표현도 적당하다), 그것이 모여 형태를 이룬 동상들, 그림 속에 짝을 짓고 있는 도플갱어(존재하기 위해 제거된 분신과의 만남), 토끼와 여우 가면과 꽃, 그리고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화면 속 여자와 얼굴을 잃은 남자들은 THE REAL展에 등장하는 대상들이다. 인물들은 서로의 물리적 현전을 무시하는 듯이 보이며 서로 시선을 교환하지도 않고, 각자 그저 타인에 대한 자신의 내밀한 환상에 열중할 뿐이다. 주체의 가면을 썼을 뿐 대상들의 일부로 전락한 그들은 꽃으로, 동물가면으로, 텅 빈 껍데기로 존재하며 우리를 매혹하는 욕망을 따라 끊임없이 부유할 뿐이다.

3. 작품 속 눈동자, 얼굴을 대신해 꽃이 박혀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이야기해 주세요.

타인의 눈을 들여다보는 것은 끔찍하다. 끝을 알 수 없는 검은 구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섬뜩한 공포를 동반한다. 그것은 그/그녀가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는 타자의 심연 속을 대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라고 가정하는 그 사람은 이미 하나의 가면이며 이미 억압되어 있다. 실제 삶의 순간들에 대한 억압은 바로 허구, 허위의 이미지로 보충된다. 찬란하게 핀 매혹적인 꽃은 그래서 시선 밖에 있지 않고 환상에 사로잡힌 시선의 발생지, 바로 인물의 눈에 있다. 환상에 사로잡힌 꽃과 가면을 쓴 인물들은 타자의 결핍을 감추는 환상의 기능을 통해서 비로소 세계를 의미 있고 일관성 있는 것으로 경험하게 된다. 우리의 사회현실 자체가 상징적 허구나 환상에 의해 유지된다면, 반대로 우리가 현실 자체의 허구적 측면을 분별하게 만드는 것, 즉 현실자체를 하나의 허구로 경험하게 만드는 지점 속에서만이 위장된 그 자신에 관한 진실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한다.

4. 작품에서 빛에 대한 생각과 작품 안에서 빛이 추구하고자 하는 의미는?

인물들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조건 중 하나는 빛이다. 인공적인 강한 빛은 상연되고 있는 연극, 또는 영화의 상황처럼 보여 지게 하며 인물들 또한 환상을 구성하기 위한 무대위에서 연기하고 있는 듯 보인다. 기념촬영 같은 <실재의 그림자>에선 강한 빛 때문에 생긴 그림자 위로 전투기와 새의 그림자가 생기는데 이것은 그림자가 인물위에 있는지, 아니면 인물들이 사진이고 그림자가 그 위에 생기는 것인지 혼란을 준다. <번식자>에서는 화려하게 등장하고 있는 유령 같은 살덩어리 동상을 개선장군처럼 부각시킨다. <실재의 그림자>를 제외하고는 그림자는 대부분 보이지 않는다. 무대조명과도 같은 빛은 우리가 가진 확고한 현실의 형상이 스멀스멀 근원으로부터 잠식하는 공포를 발산하고 있고 그것은 보아서는 안 될 것들을 감추고 있는 하나의 픽션임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이다.

5. 작업 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이야기해 주세요.

작업을 한다는 것은 접신 상태로 날카로운 작두를 홀로 타야하는 무당의 굿과도 같다. 예민해지는 신경을 누르며 작업실에 처박혀 꼼짝도 안하는 상황이 여러 달 되다 보면 자연스레 몸에 이상이 생기고 한의원이나 물리 치료실 등 당장 몸을 풀어줄 곳을 전전하게 된다. 모든 작가들의 문제겠으나 이런 물리적 고통의 한가운데 있는 것은 역시 작업에 대한 고민과 갈등에서 오는 스트레스다. 어떤 태도로 어떤 이야기들을 끌어가야 할까? 그것에 맞는 조형언어는 무엇인가? 작가들에게는 형태, 물질성, 색과 표면, 매체, 내용, 형식 등 작업 속에서 놓지 말아야 할 것, 끊임없이 노력을 통해 담금질하는 그 어떤 것들이 있다. 내게 그것은 태도이다. 그림은 내 언어의 조형적 발설이며, 무의식을 드러내는 도구이며, 삶에 대한 상징적 제스처이며, 정치적 발언이기도 하다. 그 태도 속에서 작업의 내용이 결정되고 색이 결정되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대상을 대하는 태도,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 그림을 통한 메시지는 무엇인가에 관한 태도, 퇴행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림과 삶을 풀어나가려는 태도…

난 몰두한다. 몰두하고 집중해서 훌륭한 정신력의 상태로 나를 고양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나의 병적인 태도와 나의 이기심과 나의 욕망과 나의 괴물성을 지독하게 추격한다. 그것은 참으로 고통스럽다. 또한 그 지독함의 바탕 속에 어떤 구조와 어떤 억압이 있는지, 내가 실패하는 지점에서 다르게 향유하고 행위 할 자유의 가능성을 찾을 수는 있는지, 내적 한계를 창조의 잠재적 지점으로 어떻게 능동화 할지 생각한다.

나의 그림은 출발이다. 히스테리적 상태에서의 병리적 출발이다. 그 출발은 목적지를 가지고 있다. 태도 속에서, 그 과정 속에서 그림이라는 결과물이 있고 그 결과물을 바탕으로 다음 과정을 추동하게 된다. 작가의 태도-어떤 태도를 지향할 것인가. 어떤 태도를 넘어설 것인가에 대한 지독한 탐구와 사고와 그것을 위한 노력만이 작가의 작업이 작가 자신을 넘어서는 어떤 것을 창조하게 될 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예술은 진리를 내포하며 인식에 저항하는 어떤 것을 드러낸다. 나는 낭만적 혁명가인가? 신앙인인가?

(퀴즈-이 글에서 ‘어떤’ 이란 단어가 몇 번이나 나올까요?)

6. 앞으로의 계획과 현재 그림을 그리고 있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조언해주세요.

상상력에 자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