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인터페이스 풍경]– 월간미술 2015.1월호)

이샛별의 작품에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많은 도상이 등장한다. 도상들을 한 화면에 접어 넣는 방식은 다양하다. 2층의 작은 작품들에서는 가지 많은 나무 뒤에 신원미상의 인물들을 얽어놓았고, 1층의 큰 작품들에서는 병풍처럼 펼쳐진 면들에 여러 기원을 가진 불연속적 이미지가 병렬된 유화가 있으며, 아크릴로 그린 작품은 위아래로 긴 풍경 형식을 취하면서 군데군데 여러 도상을 삽입한다. 계통수처럼 가지를 뻗어나가며 때로는 뿌리줄기 같은 방식으로 어지럽게 자라나는 식물적 구도가 있으며, 창인지 거울인지 그림인지 알 수 없는 프레임을 줄줄이 연결해 공간 저편으로 나아가는 방식도 보인다. 뭐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야생의 숲 속 큰 나무들의 세로축을 따라 미술관의 최고 높이까지 뻗어 오른다.

모두 한 화면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작품이 크든 작든 사방팔방으로 열린 구조를 가진다. 그러한 복잡한 구조 사이에 삽입된 도상들 또한 수수께끼이다. 수수께끼의 정점에 있는 것은 두건과 망토를 둘러쓴 무리이다. 그것은 계몽의 시대는 가고 다시 맹목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전령사일까. 빽빽하고 어두우며 아래로부터 무너져 내리는 숲은 ‘그렇다’고 대답하는 듯하다. 소음이 무의미를 야기하듯, 공간공포증적으로 채워진 것들은 허무를 말한다. ‘인터페이스 픙경’이라는 전시부제는 필연과 우연이 한데 얽혀있는 상호연결망의 세계에서 왔음을 알려준다. 풍경이라는 단어에는 어지러운 병렬에 내재된 모순을 굳이 해결하지 않은 채 거리를 두고 관망하겠다는 심미적 태도가 깔려 있다.

이샛별의 작품은 비의적이만, 우리를 둘러싼 크고 작은 인터페이스에서 늘 경험하는 일상의 원리와 비슷하다. 친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을 정지된 큰 화면에서 음미하게 함으로써 낯선 면을 증폭시킬 뿐이다. 아크릴로 그린 드로잉 작품은 색이라는 차원을 감축한다. 창백한 검푸른 색은 이질적인 병치를 하나의 분위기로 감싸 안는다. 그렇다고 장면 또는 풍경 사이의 균열이 감춰지지는 않는다. 괴리감과 불협화음 한편에 마술 같은 도약과 비약이 횡행한다. 문장으로 친다면 플롯, 시점, 화자, 시제 등이 온통 뒤죽박죽인 부조리한 이야기에 해당된다.

이 전시에서 풍경은 근래에 다녀왔던 제주와 호주의 풍경이 섞여있는데, 작가는 두 장소에서 아름다운 풍경의 이면을 주목했다. 제주의 풍경 뒤에는 무고한 양민이 대량 학살되었던 역사적 사건이 깔려있고, 호주의 경우에도 원주민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경험에서 감추어진 폭력을 보았다. 투시경 같은 시점에 의해 은폐된 층위들이 되살아나 유령같이 떠돌면서 풍경은 더 복잡하게 꼬이고, 피상적 아름다움은 괴기스러워진다. 이샛별의 이전 작품은 괴상한 인물이 주인공이었지만, 작가의 분신들은 이 전시에서 풍경으로 전이된다. 현실의 나, 상상의 나, 그리고 사회가 규정한 나라는 삼각구도 사이의 모순 속에 기이하게 비틀린 인물은 풍경화가 된다. 수족관, 어항, 식물원 등으로 나타나는 아름다운 자연의 컬렉션에는 선택과 배제라는 폭력적 원리가 관철되지만, 제어되지 않는 야생의 자연은 그리기라는 야생적 행위에 힘입어 억압된 것으로 회귀한다.